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말은 때로 아주 짧습니다. 어린 시절 무심코 들었던 한마디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하는데요.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에게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언이 그랬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교포 선수였던 허미미는 할머니의 뜻을 따라 태극마크를 선택했고, 마침내 자신이 태어난 일본 땅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2026년 10월 1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여자 57㎏급 결승. 허미미는 몽골의 아리운자야 테르비시를 상대로 치열한 승부를 펼쳤고, 결국 업어치기 유효를 따내며 금메달을 확정했습니다. 한국 유도가 이번 대회에서 따낸 첫 금메달이기도 했는데요. 경기 종료를 알리는 순간 허미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고, 시상대에서는 태극기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을 선택한 이유
허미미의 이야기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성장 배경에 있습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허미미는 일본에서 성장하며 유도 선수의 길을 걸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도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일본에서도 유망주로 주목받았는데요. 와세다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 진학할 만큼 학업과 운동을 함께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허미미의 선택을 바꾼 것은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생전에 손녀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2021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허미미는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고, 일본 국적을 포기한 뒤 경북체육회에 합류했습니다. 2022년부터 국제무대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대표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결정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일본 유도계에서도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허미미는 할머니의 뜻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일본에서 자란 소녀는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허미미의 가족사까지 알려지면서 더욱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격문을 붙이다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한 재일교포 3세가 한국을 대표해 세계 무대에 나섰다는 점과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가족사가 알려지면서 허미미의 태극마크에는 남다른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세계선수권 금메달과 파리의 아쉬운 은메달
허미미는 한국 대표팀에 합류한 뒤 빠르게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2022년 국제대회 데뷔전인 트빌리시 그랜드슬램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같은 해 세계선수권에서도 준결승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이후 꾸준히 국제대회 경험을 쌓으면서 한국 여자 유도의 차세대 에이스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한국 유도 역사에 확실하게 새겼습니다.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57㎏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인데요. 한국 여자 선수가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1995년 이후 무려 29년 만이었습니다. 허미미의 이름이 세계 유도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해 열린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허미미는 결승까지 진출했습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모인 무대에서 은메달을 확보하며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는데요. 결승에서는 캐나다의 크리스타 데구치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위장 공격 판정에 따른 반칙패로 금메달을 놓쳤습니다. 첫 올림픽에서 은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뒀지만, 허미미에게는 분명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습니다.
경기 후 허미미는 다음에는 더 좋은 결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할머니를 향한 마음도 잊지 않았는데요. 금메달을 따서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은 이후 허미미가 다시 매트 위에 오르는 중요한 동력이 됐습니다.
태어난 일본에서 태극기를 가장 높은 곳에
그리고 2026년, 마침내 허미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의 개최지는 허미미가 태어나고 성장한 일본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나라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유도복을 입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여자 57㎏급 결승 상대는 몽골의 아리운자야 테르비시였습니다. 허미미는 경기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했고, 업어치기로 유효를 따내며 앞서나갔습니다. 이후 상대의 거센 저항을 받으면서도 리드를 지켜냈고,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금메달을 손에 넣었습니다.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 허미미의 표정에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기쁨은 물론이고 그동안 자신을 지켜본 가족과 할머니에 대한 생각도 떠올랐을 텐데요.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자신이 태어난 일본 땅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정상에 오른 장면은 허미미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게 됐습니다.
경기 후 허미미는 가장 먼저 할머니를 떠올렸다고 밝혔습니다. 할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이 금메달을 할머니의 묘비에 가져가고 싶다는 뜻도 밝혔는데요. 단순히 아시안게임 금메달 하나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었던 약속을 지켜낸 순간이었습니다.
할머니와의 약속에서 대한민국 유도의 에이스로
허미미의 이야기는 단순한 스포츠 성공담으로만 보기에는 특별한 부분이 많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교포 선수가 할머니의 뜻을 따라 한국 국적을 선택하고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이후 세계선수권 금메달과 올림픽 은메달을 거쳐 자신이 태어난 일본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거머쥐었습니다.
특히 이번 금메달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아쉽게 놓쳤던 정상의 자리를 다시 차지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을 통해 이미 정상급 선수임을 증명했던 허미미가 이번에는 아시안게임이라는 또 다른 큰 무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선 것입니다.

물론 허미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도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등 더 큰 대회에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매트 위에서는 강한 깃잡기와 과감한 공격으로 상대를 압박하지만, 경기장을 내려오면 할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보이는 모습은 허미미라는 선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유도를 시작한 소녀는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유도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10월 1일, 태어나고 자란 일본 나고야에서 태극기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렸습니다. 할머니가 남긴 한마디를 마음에 품고 걸어온 길이 마침내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결실로 이어진 것입니다.
유도에서는 단 몇 초의 순간이 승부를 결정합니다.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빈틈을 찾아 기술을 걸어야 하는 종목인데요. 허미미 역시 자신의 인생에서 수많은 선택과 도전을 거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금빛 승리를 완성했습니다.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킨 허미미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한국 유도의 빛나는 역사 속에 오래 기억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건혁 나이 프로필 김예지 남편 고향 학력 금메달 2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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