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AMD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습니다. 인텔에 밀리고, 엔비디아와의 경쟁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AMD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AMD는 CPU와 GPU를 모두 아우르는 고성능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했고,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에 맞설 주요 경쟁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2014년 AMD의 CEO가 된 한 명의 엔지니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리사 수(Lisa Tzwu-Fang Su)입니다.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리사 수는 MIT에서 전기공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입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IBM,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를 거쳐 AMD에 합류했고, 2014년 CEO에 오른 뒤 회사의 전략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2026년 10월 7일, 이 ‘AMD 부활의 주인공’이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단순히 신제품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에서 열린 AMD 게이머 데이에 참석하는 동시에 국내 AI 반도체 생태계와의 협력 확대 가능성까지 주목받는 방한이었습니다.
대만에서 MIT까지, 반도체를 향해 달려간 리사 수
리사 수는 1969년 11월 7일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고, 뉴욕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 기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뉴욕의 브롱크스 과학고를 거쳐 MIT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전기공학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차례로 취득했습니다.
특히 그녀의 박사 연구 역시 반도체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경영학을 공부하고 기업에 들어간 CEO가 아니라, 반도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직접 연구한 엔지니어였던 셈입니다.
MIT를 졸업한 뒤 그녀가 선택한 회사들도 화려했습니다. 처음에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반도체 공정과 소자 분야의 기술 인력으로 일했고, 이후 IBM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IBM에서 무려 13년을 근무하면서 반도체 연구개발과 기술 전략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결국 IBM의 반도체 연구개발센터를 이끄는 부사장급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이후 2007년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로 이동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으며 기술 로드맵과 연구개발을 지휘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가운데 하나가 찾아옵니다.
바로 AMD였습니다.
당시 AMD는 지금과 같은 거대 AI 반도체 기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재무 부담이 컸고 CPU 시장에서는 인텔과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상당했습니다.
그런 회사를 향해 리사 수는 2012년 합류했고, 2014년 10월 CEO가 됐습니다. AMD 이사회 공식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AMD 합류 이후 글로벌 사업부문을 맡았고, CEO 취임 직전에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쳤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유행을 좇기보다 기술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침몰하던 AMD를 다시 일으킨 ‘젠’의 승부수
CEO가 된 리사 수에게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은 화려한 홍보가 아니었습니다. AMD가 앞으로 어떤 반도체를 만들 것인지, 그리고 어디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녀는 AMD의 핵심 기술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새로운 CPU 아키텍처인 ‘젠(Zen)’이었습니다.
2017년 등장한 라이젠(Ryzen)과 EPYC는 AMD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습니다. 특히 라이젠은 데스크톱 시장에서 인텔과 경쟁할 수 있는 성능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서버 시장에서는 EPYC가 AMD의 존재감을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약자로 취급받던 AMD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로 2017년 라이젠과 EPYC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AMD의 실적과 주가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당시 포춘은 새로운 라이젠과 EPYC 판매가 포함된 실적 발표 이후 AMD의 주가가 10년 만의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리사 수의 경영 스타일도 주목받았습니다. 그녀는 엔지니어 출신답게 제품의 기술적 완성도와 장기적인 로드맵을 강조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당장 다음 분기의 실적보다 몇 년 뒤 출시할 칩의 설계가 더 중요할 때가 있는데요.
리사 수는 AMD가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 결과 AMD는 더 이상 단순히 인텔의 뒤를 쫓는 CPU 업체로만 평가받지 않게 됐습니다. 데이터센터 CPU와 GPU, AI 가속기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엔비디아와 AI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물론 ‘리사 수 혼자 AMD를 구했다’고 표현하면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엔지니어와 연구진, 설계팀, 생산 파트너들의 노력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고 장기적인 기술 투자를 밀어붙인 리사 수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2026년 10월 7일, 리사 수가 다시 서울을 찾은 이유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6년 10월 7일.
리사 수가 약 7개월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이번 방한의 공식적인 중심 일정 가운데 하나는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에서 열린 ‘AMD 게이머 데이’였습니다. 리사 수 CEO는 잭 후인 AMD 수석부사장과 함께 행사에 참석할 예정으로 알려졌고, 행사 이후 국내 언론과의 질의응답 일정도 잡혔습니다.
즉, 한국의 PC 게이머들에게 AMD의 최신 CPU와 GPU 생태계를 소개하는 자리라는 의미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방한이 게이밍 행사 하나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 큰 그림은 ‘AI 반도체 협력’이었습니다.
리사 수는 이번 방한 기간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과의 협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거론된 기업에는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딥엑스, 모빌린트, 망고부스트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다만 일부 보도에서 언급되는 ‘14개 기업’ 전체가 모두 리사 수와 공식 회동을 확정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는 국내 NPU 기업들과의 협력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이기종 AI 컴퓨팅’입니다.
AI 연산이라고 해서 모든 작업을 하나의 GPU에서 처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CPU와 GPU, NPU 등 서로 다른 연산 장치를 작업의 특성에 맞게 조합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AMD가 한국의 NPU 기업들과 협력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MD의 CPU와 GPU에 한국 기업들이 개발한 NPU를 결합하는 개방형 AI 컴퓨팅 생태계를 구축하면 특정 종류의 연산에 특화된 장치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략은 엔비디아와의 경쟁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CUDA를 중심으로 강력한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며 AI 가속기 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AMD는 ROCm을 비롯한 개방형 생태계를 확대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AI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삼성 HBM부터 한국 AI 생태계까지, 리사 수의 다음 승부수
이번 방한을 이해하려면 2026년 한 해 동안 이어진 AMD와 한국의 협력 관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삼성전자와 AMD는 2026년 3월 차세대 AI 메모리와 컴퓨팅 기술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삼성전자는 AMD의 차세대 AI 가속기에 들어갈 HBM4 공급과 차세대 메모리, 파운드리 및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협력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습니다.
AI 가속기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해 줄 고대역폭 메모리가 충분하지 않으면 전체 시스템의 성능을 끌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AI 반도체 경쟁은 GPU와 CPU만의 경쟁이 아니라 HBM과 패키징, 생산능력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경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6년 7월에는 더욱 중요한 움직임이 나왔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AMD가 AI 반도체 생태계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한 것입니다.
양측은 AMD의 CPU와 GPU에 국내에서 개발한 NPU를 결합하는 이기종 AI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고 실증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국내에 ‘AMD AI Center of Excellence’를 설립해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사이의 기술 협력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AI 인재 양성과 차세대 AI 기술 공동연구, 피지컬 AI 분야 협력 역시 MOU에 담겼습니다.
따라서 이번 10월 방한을 단순한 ‘게이머 데이 참석’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습니다.
3월 삼성전자와의 메모리 협력, 7월 정부와의 AI 컴퓨팅 협력, 그리고 10월 국내 NPU 기업들과의 접점 확대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이번 방한에서 추가적인 고위급 회동이나 새로운 공급계약이 확정됐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삼성전자와 AMD의 HBM4 협력 자체는 이미 공식화됐지만, SK하이닉스와의 구체적인 신규 계약이나 이번 방한 중 별도 회동 여부는 공개된 정보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리사 수가 한국에서 노리는 것은 단순히 제품을 많이 파는 시장 하나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메모리를 잘 만드는 한국,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팹리스와 스타트업,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업과 데이터센터, 그리고 AMD의 CPU·GPU 기술을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연결하려는 것입니다.
이 전략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한국은 단순한 AMD 제품의 소비시장을 넘어 AI 컴퓨팅 생태계의 중요한 협력 거점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사 수의 인생을 돌아보면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반도체 여왕’으로 출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간 어린 소녀가 MIT에서 반도체를 연구했고,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IBM, 프리스케일을 거쳐 위기의 AMD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014년 CEO가 된 뒤 수년간의 기술 투자를 밀어붙여 AMD를 다시 경쟁의 중심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제 그녀가 바라보는 전장은 CPU와 GPU를 넘어 AI 전체 생태계입니다.
특히 2026년 한국 방문은 그 전략에서 꽤 중요한 장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HBM과 한국 AI 반도체 기업들의 NPU 기술, AMD의 CPU·GPU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협력 논의’와 ‘실제 계약’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MOU가 체결됐다고 해서 곧바로 수조 원 규모의 매출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기업과 만났다고 해서 해당 기업이 AMD의 핵심 공급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실제 공급계약과 제품 채택, 양산, 매출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리사 수의 이번 방한이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AMD가 한국을 단순한 PC 시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AI 반도체와 메모리, NPU, 데이터센터를 연결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로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살아남는 것 자체가 과제였던 AMD는 이제 엔비디아와 AI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리사 수가 있습니다.
2026년 가을, 그녀가 서울에서 꺼내든 카드는 단순한 신제품 발표가 아니라 한국의 반도체 기술과 AMD의 컴퓨팅 기술을 연결하는 새로운 협력 구상이었습니다.
과연 이 만남이 실제 계약과 양산, 그리고 한국 AI 생태계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이릅니다. 하지만 AI 반도체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리사 수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업계가 주목할 만한 장면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리사 수 회장 기본 프로필
본명: Lisa Tzwu-Fang Su(蘇姿丰)
출생: 1969년 11월 7일, 대만 타이난
국적: 미국
학력: MIT 전기공학 학사·석사·박사
주요 경력: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 IBM →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 → AMD
AMD 합류: 2012년
AMD CEO: 2014년 10월부터
AMD 이사회 의장: 2022년부터
2026년 한국 방문: 10월 7일 AMD 게이머 데이 및 국내 AI 반도체 협력 확대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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